빛은 매질 속에서 어떻게 느려질까
빛이 투명한 매질을 지날 때 일어나는 일과 진짜 흡수의 차이를 정리합니다.
빛이 유리나 물을 통과할 때, 우리는 보통 “빛이 매질과 상호작용한다”고 말한다.
다만 이 말을 곧바로 “광자가 흡수됐다가 다시 방출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조금 헷갈릴 수 있다.
빛과 매질의 상호작용은 크게 두 경우로 나누어 보는 편이 좋다.
투명한 매질에서는 진짜 흡수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유리, 물, 공기처럼 투명한 물질을 생각해보자.
빛이 들어오면 매질 안의 전자들은 빛의 전기장에 의해 흔들린다. 원자나 분자는 순간적으로 편극되고, 그 흔들림은 다시 전자기파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이 과정을 항상 다음처럼 생각하면 곤란하다.
광자 하나가 원자에 흡수됨
→ 전자가 실제 들뜬 상태가 됨
→ 다시 광자를 방출함
투명한 매질에서는 보통 빛의 에너지가 원자나 분자의 실제 에너지 준위 차이와 딱 맞지 않는다. 그래서 전자가 실제 들뜬 상태에 오래 머무르는 흡수라기보다, 빛의 전기장에 의해 강제로 흔들리는 응답에 가깝다.
고전적으로 말하면, 입사한 빛과 매질 속 전자들이 만들어 낸 전자기파가 서로 겹쳐진다. 그 결과 매질 안에서는 파의 위상이 조금씩 지연되고, 전체적으로는 빛이 진공에서보다 느리게 진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굴절률의 핵심이다.
빛이 매질 안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매질 전체의 전자기적 응답과 함께 전파된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진짜 흡수가 일어나면 통과하는 빛은 줄어든다
반대로 빛의 에너지가 원자나 분자의 에너지 준위와 잘 맞으면 진짜 흡수가 일어날 수 있다.
이때는 들어온 광자의 에너지가 전자를 들뜬 상태로 올리거나, 분자의 진동이나 회전, 격자의 열운동 같은 형태로 옮겨 간다.
예를 들어 어떤 물질이 특정 색을 흡수한다면 다음과 같은 일이 가능하다.
들어온 광자
→ 전자 또는 분자 상태가 들뜸
→ 에너지가 열, 진동, 형광 등으로 바뀜
이 경우에는 들어간 광자 수보다 밖으로 빠져나오는 광자 수가 적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광자 100개가 들어갔는데 그중 80개가 흡수되고 20개만 통과했다면, 밖으로는 평균적으로 20%의 빛만 나온다.
여기서 “0.2개의 광자”가 나온다는 뜻은 아니다. 많은 광자를 평균적으로 보았을 때 통과 확률이나 통과 비율이 20%라는 뜻이다.
흡수된 빛이 그대로 다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진짜 흡수가 일어난 뒤에도 광자가 다시 방출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방출이 원래 빛과 같은 방향, 같은 파장, 같은 위상으로 되돌아온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흡수된 에너지는 여러 길로 흩어질 수 있다.
- 열로 바뀐다.
- 주변 원자나 분자와 충돌하며 사라진다.
- 원래와 다른 파장의 빛으로 나온다.
- 형광이나 인광처럼 여러 방향으로 방출된다.
그래서 “흡수되었지만 다시 다 나오니 손실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진짜 흡수는 보통 빛의 직진 통과를 약하게 만든다.
투명한 통과에서 중요한 것은 흡수 후 무작위 재방출이 아니라, 매질의 전자들이 빛에 맞춰 거의 동시에 흔들리며 만드는 질서 있는 응답이다. 이 응답은 입사파와 합쳐져 앞으로 진행하는 파를 만든다.
정리
빛이 매질과 상호작용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상호작용이 곧 실제 흡수를 뜻하지는 않는다.
투명한 매질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전자들이 빛의 전기장에 반응해 편극되고, 그 결과 위상이 지연된 전자기파가 만들어진다. 이 때문에 빛은 느려지고, 경계면에서는 방향이 꺾인다.
반면 불투명하거나 색을 띠는 매질에서는 일부 광자가 실제로 흡수될 수 있다. 이때 빛의 에너지는 열이나 다른 파장의 빛, 분자 운동 등으로 바뀌며, 밖으로 나오는 빛의 양은 줄어든다.
비유하면 이렇게 볼 수 있다.
- 투명한 유리: 빛이 전자들을 살짝 흔들고 지나간다. 에너지는 거의 그대로 보존된다.
- 검은 천: 빛의 에너지가 분자 운동으로 넘어가 열이 된다. 나오는 빛은 훨씬 적다.
- 형광 물질: 빛을 흡수한 뒤 더 긴 파장의 빛으로 다시 내보낸다.
빛은 그냥 지나가는 것처럼 보여도, 지나가는 동안 매질 안의 작은 전하들을 조용히 흔든다.
그 흔들림이 모여 우리가 보는 굴절과 흡수의 차이를 만든다.